Page 88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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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이 공안은 동산문하(洞山門下)에서 차사문(借事問)또는 변주
문(辨主問)이라 하는데,이로써 지금 당면해 있는 문제의 핵심
[當機]을 밝히는 것이다.보통 사슴과 왕고라니를 구별하여 쏘
기 쉽지만 고라니 가운데 왕고라니는 사슴 중에서도 왕이므로
가장 쏘기 어렵다.이 왕고라니는 항상 가파른 벼랑 위에서 그
뿔을 칼끝처럼 날카롭게 갈아 자기의 몸으로 많은 사슴을 보호
하고 아껴 주니 호랑이 또한 가까이하지 못한다.이 스님도 영
리한 척하며 이를 인용하여 약산스님에게 물어 핵심을 밝혔다.
약산스님이 “화살을 보아라”고 하였으니,이는 작가종사로서
참으로 기특하였고 번뜩이는 전광석화와 같았다.왜 듣지 못하
였는가.삼평(三平)스님이 처음 석공(石鞏)스님을 참방하자,석공
스님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활을 당기는 시늉을 하면
서 말하였다.
“화살을 보라.”
이에 삼평스님은 가슴을 열어제치며 말하였다.
“이는 사람을 죽이는 화살입니까,살리는 화살입니까?”
석공스님이 활시위를 세 번 퉁기자,삼평스님이 문득 절을
올리니 석공이 말하였다.
“30년 동안 활 한 개와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있었는데,오
늘에야 반쪽 성인을 쏠 수 있었다.”
그는 문득 활과 화살을 꺾어 버렸다.
삼평스님이 그 뒤에 태전(大顚)스님에게 이를 말하자 태전스
님은 말하였다.
“사람을 살리는 화살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활과 화살을 가지
고 상대를 분별하였겠는가?”
삼평스님이 대답이 없자,태전스님은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