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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셨지요. 곧 소식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6월 중순쯤, 장경각으로 원고를 보냈다는 소식과 함께 그토
            록 기다리던 원고가 제 손에 묵직하게 들렸습니다. A4 용지로 500여

            쪽에 이르는 원고를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지
            난날 보조국사의 돈오점수를 주장하며 큰스님을 거세게 몰아붙였던 보

            조국사 1세대 연구자들의 분기탱천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일반
            단행본으로 펴내면 1천여 쪽은 넘을 거라는 말도 무색하게 며칠 만에

            다 읽고, 10여 년 동안 『선문정로』를 읽어내신 강경구 교수의 신심과 노
            력에 무슨 말로 감사를 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단순히 학자적 호기심과 연구만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작업
            이었습니다. 오로지 성철스님을 믿고 따라가보자는 굳건한 신심과 저자

            자신의 실경계 체험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성철스님
            에 대한 비판이나 긍정 등의 발언은 뒤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용

            문을 점검하고 그 뜻을 하나하나 선문과 수행자의 입장에서 짚어나가
            는 성실함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습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28

            년이 지나 『선문정로』의 연구 해설서가 출판되니  “아! 이제야 은사스님
            께서 부처님께 밥값으로 자처하신 『선문정로』의 길에 단단한 돌다리가

            놓여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철스님의 제자로서 50년을
            살아온 덕에 대종사 법계 품서도 받고 큰스님께 이 책을 봉정할 수 있

            게 됨이 참으로 감개무량했습니다.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22년간 큰스님

            을 시봉한 덕택으로 어쩌다 마음속에 담아 두신 개인적인 일들을 불쑥
            불쑥 한 말씀 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29살 때 동화사 금당에서

            칠통을 깨고 오도송을 읊고 나니 온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날 밤
            장좌불와의 자세가 저절로 되며 용맹정진에 들어가는기라. 그렇게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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