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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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제7식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거나 그 근거에 대해 회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다시 살펴보면 성철스님은 6추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직 아뢰야식의 3세의 소멸

             을 내용으로 하는 구경무심으로 논의를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점
             에서 설사 제7식이 있다 해도 논의의 대상이 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 중 ①의 ‘말나에는 이런 이치가 없으므로 논하지 않는다(末那無此
             義故不論)’는 구절이 생략되었다. 말나는 의식의 심층과 아뢰야식의 표층

             사이를 연계하면서 아뢰야와도 다르고 의식과도 달라 독립적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논의를 생략한다는 것이 문장의 요지이다.

                이에 의하면 우선 말나식은 아뢰야식과 다르다. 심층 내면의 근본무
             명이 본성을 뒤흔들어 세 가지 미세한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뢰야식

             인데 말나식에는 그런 일이 없다. 또 외적 경계가 마음의 바다를 흔들
             어 여섯 가지 뚜렷한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의식인데 말나식에는 그런

             일이 없다. 그러므로 생략한다는 것이다. 또한 말나식은 내적으로 아뢰
             야식과 구분하기 어렵고, 외적으로 의식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3세

             6추를 말하면 말나식이 자동으로 포함되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생
             략하고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말나식을 논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구절을 생략하였다.
                그것은 이 문장의 인용 의도와 관련이 있다. 말나식을 생략하는 이

             유에 대한 논의 자체를 생략함으로써 내적 무명에서 일어나는 3세와
             외적 경계로 인해 일어나는 6추로 번뇌망상의 내용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복잡하고 치밀한 논리가 수행의 실천에 도
             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내적 번뇌(아리야)와 외적 번

             뇌(의식)의 중간에 말나식을 설정하게 되면 논의가 복잡해져서 말과 생
             각이 꼬리를 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3장 번뇌망상 ·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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