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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여기에 ①의 ‘근본무
명으로 인하여(因根本無明)’가 생략되었다. 홀연히 일어나는 근본무명까
지 뽑아내야 진정한 견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인용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략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인용문을 통해 모든 번뇌는 3세6추로 귀납되고, 그 3세6추는 다시 근
본무명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다.
해결해야 할 번뇌망상에 대한 논의가 극히 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역문과 해석을 보면 이 생략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우
선 성철스님이 생략한 ①의 구절에 이어지는 ‘모두 진여본성을 밝게 깨
닫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皆不了眞如而起)’라는 구절을 “이는 다 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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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배치背馳한 인유因由로 생기生起한다.” 로 번역하였다는 점에 주
목할 필요가 있다. 왜 ‘밝게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不了)’로 번역할 수 있
는 것을 ‘배치하였기 때문에’로 옮긴 것일까?
성철스님은 견성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입장에
있었다. 특히 해오의 차원에서 깨달음을 자처하는 풍조를 깨끗이 씻어
내는 것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밝게 깨닫지 못하다’는 말은
나라는 주체가 진여라는 대상에 어둡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위험
성이 있다. 말하자면 지해知解적 차원의 앎이 깨달음의 기준으로 세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피해 진여에 배치된다는 말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진여와 하나로 계합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
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①의 생략과 관련하여 3세를 근본무명으로 보고 6추를
지말무명으로 정의한 해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신론』 등의 논의
70 퇴옹성철(2015),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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