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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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매 순간, 매 찰나, 무심을 실천함으로써 구경무심에 도달하는 길을
걷는 것이 선문의 길이다. 성철스님 역시 이러한 정신에 바탕하고 있다.
다만 모든 번뇌망상의 멸진, 구경무심의 성취를 아뢰야식 3세의 타파
로 설명하는 것은 성철스님 법문의 주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①의 ‘수억의 모든(億諸)’ 번뇌와 ②의 번뇌‘들(等)’을 생략하
여 번뇌의 수량과 종류를 강조하는 어감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결과
적으로 ‘무량한 수억의 모든 번뇌들’이 ‘무량한 번뇌망상’으로 간명하게
바뀌게 된다. 무량한 번뇌 역시 수량의 의미가 강하지만 생략하기 전에
비해 3세의 극미세망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적 탄력이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③의 지시사 ‘이爾’ 자가 생략되었다. 의미상 뚜렷한 분기가 일어나지
는 않는다. 그렇지만 지시사가 들어간 ‘번뇌가 모두 사라지면 그(爾)때’
라는 구절과 이를 생략한 ‘번뇌가 모두 사라진 때’라는 구절 간에는 그
의미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가 있게 된다. 지시사가 있으면 시간적 개념
이 강해진다. ‘그때’와 상대되는 다른 어떤 시간이 설정되기 때문이다.
지시사를 생략하면 ‘번뇌가 모두 사라지면’의 조건절의 뜻이 뚜렷해진
다. 이를 통해 깨달음의 과정에 해오와 분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설법
의도 가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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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의 ‘깨달음의 지혜證知’에서 ‘증證’ 자가 생략되었는데 편집 시 일어
난 탈자로 보인다. 성철스님의 번역에도 ‘불성을 증득하여’로 ‘증證’ 자가
적용되어 있다. 복원되어야 한다.
⑤에서는 ‘요요 了了’를 ‘명료明了’로 바꾸었는데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
『
89 대열반경』에서 견성이 곧 구경의 성불임을 누차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오
와 분증을 정설이라 우긴다면 그건 불법을 헐뜯는 외도가 아니겠는가? 퇴옹성철
(2015), p.77.
제4장 무상정각 ·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