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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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보는 견성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견성하지 못했으므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없었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라한이 성취한 해탈은 무엇인가? 이 점을 밝히기 위해
『대열반경』에서는 두 가지의 해탈을 말한다. 하나는 출발에 해당하는
씨앗의 단절(子斷)에 의한 해탈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의 단절(果斷)에 의
한 해탈이다. 씨앗의 단절은 번뇌의 단절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결과의
단절은 불성을 보는 일에 의해 일어난다. 그런데 아라한은 불성을 모른
다. 따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취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
문장의 요지이다.
성철스님은 이 인용문에 의거하여 “아라한은 유여열반有餘涅槃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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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이 아니” 라고 규정한다. 견성이 무여열반, 즉 아뇩다라삼먁삼보
99 퇴옹성철(2015), p.84. 아라한의 유여열반과 관련하여 원택스님의 회고를 듣고
『백일법문』을 다시 살펴보면 성철스님이 최초의 가르침을 받은 다섯 비구를 부처
님과 똑같은 자리에 도달하였다고 평가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교진여를 시작으로 ‘생사 그대로가 열반임’을 깨달은 다섯 비구를 보면서 부처님
은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여섯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특히 성철스님
은 다섯 비구가 ‘일체의 유루심을 해탈했다’는 말을 ‘제8아뢰야식의 근본무명까
지 완전히 다 끊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원래 아라한의 깨달음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는 것은 대승불교의 일반적 관점이다. 대표적으로 천태에서는 10주 초
주에 성문의 극과인 아라한과를 증득한 뒤 본격적인 분파분증의 여정을 시작한
다고 본다. 성철스님 역시 “2승무학二乘無學의 경계는 3계三界 번뇌를 영단永斷한
멸진정이다. 그러나 회심멸지灰心滅智한 유여열반에 주착住著하여 있으므로 무상
정각無上正覺인 무여열반은 망연히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곳곳에서 피력
한다. 그럼에도 다섯 비구를 부처의 극과를 성취한 대비구라고 말한 것은 근본불
교와 대승불교, 나아가 선불교를 우열 관계로 교판하는 대신 오직 깨달음의 진실
성만을 문제 삼았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관점에 의한
설법의 총화가 바로 『백일법문』이다. 성철스님은 이 법문에서 불교의 범주에 속하
는 모든 흐름이 ‘중도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동일성을 공유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러니까 성철스님의 아라한에 대한 평가는 대승불교의 일반론과는 궤
를 달리한다. 비록 아라한의 유여열반을 지적하기는 하지만 그중에도 완전한 무
여열반을 성취한 견성성불의 예가 있다는 것이다. 아라한이 무여열반을 알지 못
제4장 무상정각 ·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