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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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성취와 같으므로 견성 이후의 수행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

            을 강조하기 위한 인용이고 해석이다.



               【4-9】  菩薩이 位階十地하여도 尙不明了知見佛性이니 何況聲聞
               緣覺之人이 能①[得]見耶아



               선문정로  지위地位가 최후인 제10지第十地에 도달한 대보살도 오히려

               불성을 명료明了히 지견知見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성문연각聲聞緣覺
               이 능히 정견하리오.



               현대어역  보살이 제10지의 지위에서도 불성을 명료하게 알고 보지 못

               하는데, 하물며 성문과 연각이 볼 수 있겠는가?



            [해설]  10지보살은 불성을 밝게 보지 못하며, 성문과 연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인용문이다. 『대열반경』은 아상의 부정(無我)에서 진실한

            나(眞我)의 제시로 설법의 방향을 바꾼 경전이다. 불성론의 출현을 알리
            는 경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논리상 뛰어넘기 어려운 비약이 있다. 무엇보다도
            여래는 왜 불성을 바로 설하지 않고 무아를 먼저 설했는가에 대한 질

            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대열반경』에서는 그 답변의 일환으로 왕세자가
            가지고 나간 칼에 대한 비유를 든다.

               불성은 행방불명된 왕세자가 가지고 나간 칼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




                한다는 성철스님의 논의는 퇴옹성철(2015), p.332 ; 다섯 비구의 깨달음을 무여
                열반으로 평가한 논의는 퇴옹성철(2014), 『백일법문』(상), pp.171-17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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