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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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양성의 총화라서 한마디로 형언하기 어렵다.
그것을 하나의 모양으로만 기억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을 위해 왕세자를
기다리는 왕들은 그런 칼은 원래 없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집착과 잘
못된 인식을 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후 그 칼에 대해
푸른 연꽃과 같다, 양의 뿔과 같다, 불꽃처럼 붉다, 검은 뱀과 같다는
등으로 분별하여 말한다. 이에 복귀하여 왕위에 오른 왕세자가 그대들
은 내 칼의 진실한 모습을 몰랐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직접 보
여준다. 불성이 곧 그렇다. 그러니까 그런 칼은 없다(無我)고 하는 말이
나 이것이 내 칼의 진짜 모습이라고 직접 보여주는 일(佛性)이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성문과 보살들은 불성을 보았지만 칼을 어렴풋이 본 신하들과 같다.
그래서 그 불성에 대해 엄지손가락 같다, 쌀과 같다, 잡초의 씨앗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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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해가 타오르는 것과 같다 고 말한다. 불성의 실상을 밝게 보지 못
한 이유이다.
이처럼 밝게 보지 못하는 범주에는 보살의 최후인 10지보살도 포함
된다. 10지보살도 남김없이 견성하지 못했다는 맥락에서 따온 이 인용
문에 ①의 ‘득得’ 자가 생략되었다. ‘득得’은 옛말로는 ‘시러곰’이라 번역하
였는데 ‘~할 수 있다’는 뜻을 갖는다. 그런데 여기에 유사한 기능을 하
는 ‘능能’ 자가 있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문 문장의 매끄러
움이 사라지는 대신 뜻이 간명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간명한
의미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성철스님의 인용 방식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
100 大般涅槃經』(T12, p.653c), “我見我相大如母指, 或言如米, 或如稗子, 有言我相
住在心中熾然如日.”
제4장 무상정각 ·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