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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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청정선을 함께 논한 것은 마조스님이야말로 선문의 대표라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마조스님은 평상심이 도라 하고, 또 자기 마음이 바로 도
            라 하며, 이것을 지금 여기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므로 닦을 필요조차

            없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마조스님의 이러한 가르침에는 원리적 차원에
            서의 깨달음과 실제적 깨달음이 뒤섞여 있다. 어쩌면 이로 인해 지해적

            차원의 경계 체험을 깨달음으로 자처하는 병폐가 나타날 수도 있다.
               성철스님은 이 점을 주목하며 마조스님이 설한 돈오로서의 깨달음과

            여래의 원각이 완전히 같은 것임을 힘써 강조하고자 한다. 망상이 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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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일과 무생을 철증하는 일은 동일한 일 로서, 이를 여래청정선이
            라 한다는 것이다. 인용문은 이러한 설법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설법일
            수 있다. 마조스님 스스로 자신의 선이 여래선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

            다.
               ①에 ‘즉卽’→‘즉則’으로의 대체가 보인다. 모두 ‘~하면 곧’이라는 조건

            절을 이끄는 글자로 통용되는 관계에 있다.
               ②의 ‘경계境界’에서 ‘계界’ 자가 생략되었다. 경계境界나 경境은 모두 마

            음의 상대가 되는 외적 경계를 드러내는 말이므로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
               ③의 ‘즉卽’은 단순 생략이다. ‘곧’, ‘바로(卽)’는 ‘~이다(是)’를 강조하는

            부사어로서 이를 생략해도 뜻에는 변함이 없다.
               ④에 ‘좌坐’→‘생生’의 대체가 발견된다. 이 글자는 형태상의 유사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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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해 집필 시 잘못 필사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이렇게 변


             128   성철스님에게 무생은 망념의 멸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망념이 멸진하면 이것
                이 무생이다, 일체 망상이 소진한 무생, 무여열반이 곧 견성이라고 거듭 강조한
                다. 이에 대해서는 퇴옹성철(2015), pp.125-126 참조.
             129   동일한 문장이 『백일법문』에도 나타나는데, 불수불좌不修不坐의 원문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우연한 오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백일법문』에서도 성철스님은 불수불좌不修不坐를 수행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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