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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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아지못케라. 스님의 설법하신 바는 어떠합니까? 6조六祖 말

               씀하되, 생도 없고 멸도 없음이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니라.



               현대어역  스님의 설법은 어떠하신지 알고 싶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
               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지 어떻게 좌선하는 일에 있겠는가?

               경전에 ‘만약 여래가 앉았다거나 누웠다거나 말을 한다면 그것은 삿
               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하면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생성도 없고 소멸도 없는 것이 바로 여래청정선
               이다.



            [해설]  6조스님이 직접 자기 가르침의 핵심이 여래청정선에 있다고 설

            하는 내용이다. 좌선이라는 특별한 모습이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생멸을 떠난 불이중도의 체화 그 자체라 할 수

            는 있어도 좌선을 인연으로 하여 증득하는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육조단경』의 이 문장을 인용한 것은 마조스님과 6조스님의 여래청

            정선에 대한 규정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앞에서 살펴본 바, ‘불좌不坐’를 ‘불생不生’으로 대체한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기도 한다. 6조스님은 이 설법에서 좌선이라는 특별한 모양에 집
            중하는 대중들의 선입견을 교정한다. 진정한 깨달음의 수행, 즉 여래청

            정선은 생멸 없음(無生無滅)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지 앉는 일(坐)에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불좌不坐와 불생不生은 동일한 내용의 다른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인용문 중 ①과 같이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지 어떻게 좌선하

            는 일에 있겠는가(道由心悟, 豈在坐也)’는 문장이 생략되었다. 6조스님에게
            수행은 가고 옴이나 생성과 소멸의 상대적 차원이 일어나지 않는 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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