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7 - 정독 선문정로
P. 237
傳衣)’를 묻고 있고, ②에서는 ‘신수스님은 유심에 머물러 있었고, 인위적
수행으로 닦아 깨달은 것을 옳다고 여기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爲他有
心, 是有爲法所修所證, 將爲是也)’ 의발을 전수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있다.
신수스님과 6조스님의 닦음과 깨달음에 유심과 무심의 차이, 유위법
과 무위법의 차이가 있음을 밝히는 문장이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6
조스님과 여래의 깨달음이 동일하다고 한 부분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선문의 대표인 6조스님의 경우를 통해 조사와 여래의 깨달음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신수스님에 대한 긴 문장을 생략
한 것이다. 문맥의 전환이 이루어진 경우에 해당한다.
③의 ‘비밀리에 전수하다(密授)’를 생략한 것은 깨달음에 대한 성철스
님의 관점이 적용된 결과이다. 이 구절을 그대로 두면 ‘극히 깊은 여래
의 뜻을 비밀리에 전수해 줌을 얻을 수 있었다(得密授如來甚深)’는 뜻이
된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생략하여 ‘여래의 심심甚深한 밀의密意를 증득
하였다’로 바꾸었다. 즉 ‘밀수密授’를 생략하지 않으면 여래의 뜻을 전달
해 주는 주체가 5조스님이 되고, 이를 생략하면 여래의 뜻을 증득하는
주체가 6조스님 자신이 된다.
성철스님에게 있어서 여래의 마음은 스스로 증득하는 것이지 전해
주는 누군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조단경』의 문장 역시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칫 선문의 표현법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
여 무엇인가 진짜 비밀스럽게 전해 주고, 전해 받은 것이 있다고 이해하
는 수행자가 있을 수 있다. 생략을 통해 그러한 가능성을 미리 차단한
것이다. 이로써 6조스님의 깨달음이 스스로 증득한 결과라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밀수密授’를 생략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5-5-①】 如來禪祖師禪이 豈有兩種이리오 未免媕含하야 各分
제5장 무생법인 ·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