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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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6조스님의 법문은 지역의 수령이던 위사군韋使君의 요청에 의

             한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위사군이 재가불자에게 적절한 수행법이 있는
             지를 묻는다. 이에 6조스님은 게송의 방식으로 재가불자의 수행 역시

             모양을 설정하지 않고(無相), 머물거나 지향하는 바 없고(無住), 분별집착
             을 멈추는(無念) 실천에 있음을 가르친다.

                게송은 전체 14수에 달하는데, 인용문은 제1수의 두 구절에 해당한
             다. ‘성품을 깨닫는 법(見性法)’은 돈황본에는 ‘오직 지금 당장 깨닫는 법

             (頓敎法)’으로 표현되어 있다. 돈황본에는 당장 깨닫는 돈오에 대한 강조
             가 뚜렷하다. 물론 돈오법과 견성법은 모두 6조스님이 완성한 깨닫는

             법의 다른 표현이다. 성품은 전체 현상에 스며들어 떼어낼 수 없는 무
             엇이다. 이것을 아는 일은 모든 현상을 하나하나 체험하는 과정을 필

             요로 하지 않는다. 나와 그것이 한 몸임을 단번에 보아 당장 볼 수 있는
             것이므로 견성법은 곧 돈오법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돈오견성법으로 묶어 표현한다. 그리하여 돈오견
             성법만이 실질적 깨달음을 성취한 불지인 증오證悟이며, 이것만이 실법

             實法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증오는 관념적 이해의 성분을 모두 떨어낸
             구경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의 대원각이라야만 돈오견성이라 할 수 있다
             는 것은 성철스님의 지론이다. 돈오견성의 체험으로 깨달음의 여정을

             시작한다는 돈오점수론과 그 길이 크게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떻
             게 보아도 이 문제의 핵심은 돈오견성이 시작점인지 마지막 도달점인지

             에 있다.
                돈오점수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돈오견성이 시작점이라면 그 체험

             한 내용을 점점 확고히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여정에는 자유와 낭
             만이 있다. 다만 이것이 지나치면 막행막식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




                                                             제6장 무념정종 ·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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