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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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역  나의 이 법문은 [예로부터] 생각 없음(無念)을 [우선적인] 종

               지로 세우고, 모양 없음(無相)을 본체로 하며, 머물지 않음(無住)을 근
               본으로 합니다.



            [해설]  생각 없음(無念), 모양 없음(無相), 머물지 않음(無住)에 관한 이

            법문을 흔히 세 가지 없음에 관한 법문이라 하며 『육조단경』 법문의 핵
            심으로 꼽는다.

               물론 생각 없음이라 해서 지각 작용으로서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니다. 모양에 따라 분별하지 않는 것이 생각 없음이다. 모

            든 현상은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모양을 갖는다. 둥글고 모난 것도 모
            양이고, 아름다움과 추함도 모양이고, 착함과 악함도 모양이고, 추구하

            거나 버리려 하는 것도 모양이다. 심지어 공함조차 있음에 상대되는 없
            음이라는 모양이 된다. 이러한 모양을 대하되 어떠한 모양에도 시비분

            별과 취사선택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이 생각 없음이다.
               그러니까 생각 없음은 모양 없음과 동의어일 수밖에 없다. 모양 없음

            을 본체로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모양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모
            양에 대해 시비호오의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지 모양을 지워 버

            리거나 모양에 눈 감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 없음을 강조
            하는 설법을 듣고 그것을 개념화하여 이에 집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개념이야말로 중요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특히 허공과 같은 모양
            없음의 차원을 따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모양을 대하되

            그 모양에 지배되지 않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진여와 하나되는 평등
            의 길이며, 우주법계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눈앞의 부처에게 바로 돌

            아가는 길이다.
               머물지 않음 역시 둘 아닌 이 일의 다른 표현이다. 머물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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