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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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돈오입도요문론』의 중도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따온 인용문
이다. 전체 문맥을 보자면 상대적 두 차원(二邊)을 세우지 않는 일을 일
체처에 무심한 일이라 한다. 일체의 모양에 본질이 따로 없음을 아는
일을 일체처에 무심한 일이라 한다. 무심이 결코 무생물과 같은 무지각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일체처에 무심함이 중도의
실천이므로 그것은 보리, 해탈, 열반, 적멸, 선정의 내용이 된다. 성철스
님은 무심이 곧 구경불지임을 보여주기 위해 이것을 인용하였다.
이 중 ①의 ‘~을 얻을 수 있다(得)’를 추가하였다. ‘득得’과 관련하여
문법적 일관성을 갖추려면 보리와 해탈, 열반과 적정, 선정과 견성을 말
하는 세 구절에 모두 ‘득得’을 붙이는 방법과 맨 앞의 보리와 해탈에만
붙이고 나머지를 모두 생략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원문은 맨 앞에
서 전체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득得’을 붙였다. 성철스님의 인용문은 두
번째 구절에도 ‘득得’이 있으므로 문법적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
서 다시 번역문을 살펴보면 ‘보리해탈과 열반적멸涅槃寂滅과 선정견성禪
定見性을 체득하려면’으로 ‘득得’이 한 번만 적용되어 있다. 추가할 의도
가 없었던 것이다. 초판 편집 시 일어난 식자의 오류로 보이므로 삭제하
는 것이 좋겠다.
②의 ‘자者’를 생략한 것은 문장의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자者’를 붙이면 ‘일체처에 무심함을 떠나 보리, 해탈, 열반, 적멸, 선정,
견성을 구하는 사람(者)은 옳지 않다’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155
성철스님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바로 보리, 해탈이라는 점을 강조 하
는 것이 대주스님의 설법 요지라 보았다. 이에 그 등치 관계를 강조하기
『
155 頓悟入道要門論』(X63, p.24a), “一切處無心者, 卽修菩提, 解脫, 涅槃, 寂滅, 禪
定, 乃至六度, 皆見性處.”
제6장 무념정종 ·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