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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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10선에 이르고자 한다. 범부 차원의 유심적 지향이다. 성문은 고
苦와 집集을 전환하여 멸滅과 도道에 이르고자 한다. 연각은 생사의 흐
름을 돌이켜 소멸하는 길을 걷고자 한다. 여래승, 즉 불승은 무명을 전
환하여 보리에 이르고자 한다. 성문승이나 연각승, 불승에는 성인이 되
겠다는 유심적 지향이 있다. 그래서 제천승에서 불승에 이르기까지 모
두 유심에 의한 전향이라고 말한 것이다. 닦는 주체가 있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어 유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
해 선종에서는 지향하는 바 없이 오직 하나일 뿐이며, 지금 이것일 뿐
이며, 오직 나아갈 뿐인 길을 제시한다. 여기에서는 부처와 조사조차
오염된 이름이다. 모든 지향을 내려놓아 실천하는 주체도 없고, 지향하
는 법도 없고, 머무는 바도 없는 이것을 일승이라 부른다. 이것이 인용
문이 뜻하는 바이다.
인승, 천승, 성문승, 연각승, 제불여래승까지 포함한 모든 수행의 길
이 유심의 차원이며, 구경무심의 일승은 수행의 주체나 수행의 길 자체
가 아예 성립되지 않는 차원이라는 내용이다. 무심이 얼마나 고차원의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용한 문장이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요즘 불교를 공부합네 하는 사람치고 무심이란 단어를 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무심이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
감처럼 그렇게 가볍게 치부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8
한편 성철스님은 그 수증론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경전을
인용하면서 그 인용문에 대해 생략, 추가, 변환 등의 방식으로 개입한
8 퇴옹성철(2015),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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