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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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문정로』에 끝없이 추구되고 있는 보다 궁극적인 또 하나의

             지향이 있다. 바로 불교의 뿌리 중의 뿌리인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돌아
             가고자 하는 지향이다. 왜 굳이 여래선이 곧 조사선임을 밝혔던 것일

             까? 그것은 조사선을 여래선의 위에 두고자 했던 관점에 동의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철스님은 조사선의 일부 갈래에 대해서

             일정한 비판적 관점을 유지한다. 특히 증오證悟가 아닌 본각에 바탕한
             구두선적 허담虛談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다.

                성철스님은 부처님처럼 살기를 원했다. 그것은 생활은 물론 그 닦음
             과 깨달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의 구경각은 비상비비상의

             고도의 선정에도 머무는 바 없이 나아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게
             궁극적으로 깨닫는 것만이 진정한 불교의 길이라 보았던 것이다. 『선문

             정로』의 집필을 마치고 ‘부처님께 밥값 하였다’고 한 의미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3. 문장 인용의 특징





                【7-1】  內外①[虛]寂하고 湛然凝照하야 到一念不生處하야 透徹

                ②[徹透]淵源하야 翛然自得하면 體若虛空하야 莫窮邊量이라 亘古
                亘今하야 萬像③[象]이 羅籠④[籠羅]不住하며 凡聖이 拘礙不得하

                야 淨裸裸⑤[倮倮]赤灑灑하나니 謂之本來面目이며 本地風光이니
                라 一得永得하야 盡未來際하나니 更有甚生死하야 可爲滯礙리오

                ⑥[至於小小得失是非, 榮枯寂亂, 直下截斷, 把得住作得主, 長
                養將去. 一心不生, 萬法無咎. 只是切忌起見作承當, 便落彼我,




                                                             제7장 보임무심 ·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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