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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미움의 마음이 일어나 구속을 말끔하게 벗지 못하게 되기 때문
               입니다.



               앞에서 “한 번 증득하면 영원히 증득하는 것이니 미래의 끝이 다할

            때까지 생성이니 소멸이니 하는 일에 걸리고 막힐 일이 없다.”라고 했
            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견해가 일어나 분별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로 인해 전달하고자 하
            는 뜻에 손상이 일어난다고 본 것 같다. 이 문단을 생략한 이유에 해당

            한다.
               번역문 ⑦의 ‘망실亡失하지 않나니……’는 원문에 없는 구절을 더한

            것이다. 성철스님에게 무심과 유심 사이를 널뛰기하는 것은 진정한 무
            심이 아니다. 요컨대 성철스님이 인정하는 무심은 한 번 증득하면 영원

            히 증득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경계에 해당한다. 이 점
            을 강조하기 위해서 설명식 번역문을 구성한 것이다. ‘한 생각도 일어

            나지 않는 자리(一念不生處)’와 관련하여 이와 비슷한 문장이 원오스님의
            「광 선인에게 말함(示光禪人)」이라는 글에 보인다. 이 글에서는 “한 번 증

            득하면 영원히 얻어 자기 것으로 쓰는 것이니, 어떻게 그 끝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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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겠는가.” 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까 ‘미래의 끝이 다하도록(盡未來
            際)’이라는 이 구절이 한 번 증득한 사람의 깨달음은 사라지는 일이 없
            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원오어록』과 『원오심요』에 깨달음 이후에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하여 동일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여기에서

            는 깨달음 이후에도 ‘견해가 일어나 스스로 주체를 자처하는 일이 없




                『
             170   圓悟佛果禪師語錄』(T47, p.778b), “一得永得受用, 豈有窮極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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