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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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閑閑한 묘도妙道의 정체正體에 계합契合하느니라.



               현대어역  안으로 마음에 분별이 없고 밖으로 대상경계에 휘둘리지 않

               게 된 이후라야 큰 도에 깨달아 들어가게 됩니다. 깨달아 들어가 보
               면 깨달음도 깨달음이 아니고 들어감도 들어감이 아닙니다. 시원하

               게 끝까지 통하여 마치 통 밑이 왕창 빠지는 것처럼 되어야 비로소
               생멸이 없고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하고 한가할 뿐인 오묘한 도의 바른

               본체와 신표처럼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해설]  원오스님이 황 통판黃通判에게 보낸 답신의 일부이다. 통판通
            判은 각 지방의 곡식 운송과 토지, 수리 등을 관장하는 지방 관리로서

            소송 등의 사무를 겸임하였므로 통판이라 불렀다. 황 통판은 선에 심취
            한 수행자였다. 마음을 쉬어 애써 노력하기를 멈추고 이런저런 헛된 인

            연들에 흔들리지 않는 공부를 계속하다가 여여한 자성을 보는 체험을
            한다. 이에 그 사연을 편지에 적어 원오스님에게 보낸다. 원오스님은 황

            통판의 체험을 인정한다. 그렇게 생각을 쉬고 사유를 맑게 하는 일이야
            말로 도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렇게만 하면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격려를 보낸다.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에 대한 원오스님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인

            용한 문장이다. 원오스님은 깨달으면 생멸이 없고 할 일이 없는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오묘한 도는 한가하고 한가할 뿐이다. 이 오묘

            한 도의 바른 본체와 신표처럼 맞아떨어지는 일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한가할 수밖에 없다. 깨달았다면서 보임의 길을 물었는데 오로지 한가

            할 뿐인 경계에서 유희적으로 노니는 일 외에 어떤 것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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