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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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대도大道를 체득한 고사高士는 무심을 철저히 심증深證한 바
라. 비록 만반군기萬般群機가 일시에 내부來赴하여도 어찌 그 정신을
요동搖動하며 그 심려深慮를 간범干犯하리오. 다만 한한閑閑한 심지心
地만 수호하여 우치愚癡함과 같으며 둔올鈍兀함과 같으니, 백사百事에
응임應臨하여서는 급풍急風과 같이 선회旋回하며 비전飛電과 같이 활
전活轉하여 적기的機에 정당正當치 않음이 없느니라.
현대어역 큰 도를 체득한 사람은 [그 발 디딘 자리가 높고 깎아지른
듯하여 어떠한 현상과도 상대하지 않는다. 움직일 때에는 추호의 먼
지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니 숲에 들어가되 풀을 움직이지 않고
물에 들어가되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 정도에 그치겠는가? 안으로
는 걸림이 없고 고요하며 밖으로는 관조하는 공부까지 끊어 시원하
게 스스로 증득하였기 때문이다.] 무심을 깊고 철저하게 증득하였으
므로 어떠한 상황이 갑자기 닥친다 해서 그 정신이 흔들릴 일이 있
겠는가? [무수한 고난이 불쑥 닥친다 해도] 그 생각이 어지럽혀지겠
는가? [평소에는] 다만 한가하고 한가한 마음의 바탕만을 수호할 뿐
이라 마치 바보 같고 멍청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일을 처리하고 [상황
에 대응할 때에는 애당초 어떤 재주도 부리지 않지만 일을 처리할 때
에는] 빠른 바람처럼 선회하고 나는 번개처럼 활발히 움직여 상황에
딱 맞지 않는 일이 없다.
[해설] 원오스님이 원圓수좌를 송별하며 권면의 뜻으로 내린 설법의
일부이다. 일시적 눈뜸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장구한 시간에 걸쳐 도저
한 공부에 힘쓰라는 당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용문은 이러한 공부
의 끝에 만나게 되는 무심의 자유로운 경계를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은
제7장 보임무심 ·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