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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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앎과 견해, 이해 등의 장애가 모두 녹아 버리니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남전南泉이 말하기를, “평상심이 도”라 한 것
이다.
[해설] 윤상인倫上人이라는 수행자에게 주는 원오스님의 법문이다. 도
를 닦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마음과 생각을 일으켜 무언가를 지
향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마음을 끊고 내려놓는 수행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원오스님은 ‘평상심이 도’라는 말이 무심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생각이 일어난 후 그것을 가라앉히고자 하면 벌써 틀린 일이다. 오
로지 생각을 끊고 끊어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숨결이 끊어지도록 하되
거기에서 되살아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한 무심
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물러섬이 없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렇게 거듭거
듭 끊고 내려놓다 보면 만사만물이 그대로 진리의 드러남임을 확인하게
되는 날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끝없는 내려놓음
의 실천이다. 석가도 태어날 때부터 석가는 아니었다. 미륵도 저절로 되
는 미륵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끝없는 수행을 통해 자유자재한 자리를
스스로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원오스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이러한 법문의 일단을 인용하면서 ①과 같이 ‘지之’ 자를 생략하였다.
의미상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생략하면 무심지無
心地가 하나의 고유한 경지가 될 수 있다. 원래 무심지는 각각의 상황
및 지위에 통용되는 말이기도 하고, 궁극적 차원에 한정적으로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통용되는 경우, 그 의미 폭은 상당히 넓다. 잠을 잘 때,
기절했을 때, 무상정, 무상생無想生, 멸진정과 무여의열반의 차원을 모
두 무심지라 부르기 때문이다. 궁극적 차원에서는 그 의미가 극도로 한
제7장 보임무심 ·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