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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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는 것을 농사꾼의 소를 쫓아내는 일, 배고픈 사람의 밥을 빼앗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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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로 비유한다. 농사꾼에게 소는 궁극의 자산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은 생명 그 자체이다. 이 마지막 기댈 곳조차 없애는 일이 수행이라
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하여 도달하는 대해탈 경계의 특징을 강조한다.
그 경계는 무궁한 겁을 거쳐도 변함이 없다. 만약 이러한 여여불변, 자
유자재한 경계가 없어진다면 깨친 것이 아니다. 견성도 아니다. 그러므
로 깨치고 나서 차근차근 망상을 없애 나간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고명한 차원이라 해도 수행할 것이 남아 있다면 오후보임悟後保任
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체험하고 있는 이 무심이 궁극의 것인지 아닌지를 어
떻게 판별할 것인가? 여기에 조사의 관문이 필요하다. 성철스님의 숙면
일여는 바로 그러한 기준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그 무심의 진실성을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용문 ①과 같이 떼어 읽은 위치에 따라 ‘시중時中’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성철스님은 ‘시時’를 앞의 구절에 붙여 ‘무사안온한 곳에 도달한
때에는’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하면 ‘중中’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바를
특정하기 어렵게 된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심중心中’으로 번역한다. 그래
서 그 뒤에 이어지는 ‘무허기저공부無虛棄底工夫’를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고 옮기는 대신 원문에 손을 보아 ‘허가虛假한 공부가 없다’로 번역
했다. ‘허가虛假’는 허망하고 거짓되다는 뜻이고, 원문의 ‘허기虛棄’는 ‘헛
되이 버린다’는 뜻이다. 대무심지, 대해탈경계, 구경각의 절대적 진실성
『
196 佛果克勤禪師心要』(X69, p.455b), “意在鉤頭, 只貴獨脫. 切忌依草附木, 所謂驅
耕夫之牛奪飢人之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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