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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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크지 않다. 다만 원문의 ‘극오궁심極奧窮深’은 ‘궁窮’ 자의 역동성 때문
에 ‘극히 심오한 자리로 끝까지(窮) 나아간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
러면 환희하는 자리에서 본지풍광을 밟는 자리로 더 나아가는 길이 세
워진다. 깨달으면 그대로 성불이라서 더 나아갈 자리가 없다는 것을 강
조하는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이다. 생략의 이유에 해당한다.
③과 같이 ‘무위無爲’를 생략하였다. 무심과 무위와 무사는 깨달음에
대한 단골 수식어이다. 이 중 무위는 ‘하는 일 없음’으로 번역되어 그 뒤
의 ‘할 일 없음(無事)’과 비슷한 말이 된다. 무위와 무사는 행위의 주체
와 행위의 대상으로 나눌 수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의미가 구분된다.
그렇지만 번역을 해 놓고 보면 유사어 내지 동의어로 이해될 수밖에 없
다. 그래서 이를 생략함으로써 문장의 뜻을 간명히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④에 생략된 ‘갱更’ 자는 바로 뒤의 부정사 ‘무無’ 자를 강조하는 부사
어로서 ‘다시, 전혀’의 뜻을 갖는다. 수식 성분이므로 생략해도 뜻의 변
화는 없다. 이미 하루 24시간 끊어지지 않는 무심을 강조하는 표현이
앞에 제시되었다는 점을 고려한 생략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번역문 ⑤와 같이 ‘환희처歡喜處’가 ‘탈락한 처소’로 번역되
어 있다. 1981년 불광출판사에서 간행된 초판본이나 1993년의 가로쓰
기 조판본에도 ‘歡喜한 處所’ 200 로 되어 있다. 이것이 2006년 본에 ‘탈
락한 처소’로 잘못 입력되어 2015년 본에 이르게 된 것이다. 편집상의
오류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선문에서는 이 환희하는 경계에 대
해 경계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음의 경우가
그렇다.
『
200 선문정로』, 불광출판사, 1981, p.95 ; 『선문정로 평석』, 장경각, 1993, p.109.
제7장 보임무심 ·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