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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掃地焚香이 ③皆悉無量之佛事어늘 又安可廢리오 但不著修證④
[耳]이니라 九地도 尙無功用⑤[行]이어늘 況十地乎아 乃至 等覺이
說法을 如雲如雨⑥[如雨如雲]하야도 猶被南泉呵斥하야 與道全乖
어늘 況十地觀照가 與宗門而較其優劣이 可乎아
선문정로 남악南岳이 “수증修證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즉 얻을 수 없
다.”고 말하였다. 이 불오염不汚染의 수修는 가위可謂 원수圓修니 수修
자가 붙을 수 있는가. 이 불오염不汚染의 증證이 가위可謂 원증圓證이
니 증證 자가 붙을 수 있는가? 이러한즉 종일토록 수修하여도 수修
함이 없어서 소지분향掃地焚香이 전부 무량無量한 불사佛事이어늘, 이
를 또한 어찌 폐廢하리오. 다만 수증修證에 착著하지 않을 뿐이다. 9
지九地도 오히려 무공용無功用이어늘 하물며 10지十地리오. 설사 등
각이 설법하기를 여운여우如雲如雨하여도 오히려 남전南泉의 가척呵斥
을 당하여 대도大道에 전연 배괴背乖되었거늘, 하물며 10지보살의 관
조로써 선문의 우열을 논할 수 있으리오.
현대어역 남악스님의 말씀에 “닦음과 깨달음이 없지는 않으나 오염시
킬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렇게 오염되지 않는 닦음이라야 완전한
닦음이라 할 수 있으니 여기에 다시 닦음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
겠는가? 이렇게 오염되지 않는 깨달음이라야 완전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으니 여기에 다시 깨달음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겠는가? 이
와 같이 하면 종일 닦아도 닦는 일이 없어서 빗자루질하는 일, 향 사
르는 일이 모두 한량없는 불사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 수행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다만 닦음과 깨달음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9지보살
도 여전히 무공용을 실천하는데 10지보살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제7장 보임무심 · 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