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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각보살이 설법을 비 내리듯 구름 덮듯 해도 남전南泉스님에게 꾸짖
음을 당했으니, 진리에서 완전히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10지보
살의 관조를 가지고 선종과 그 우열을 비교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해설] 박산무이선사의 법어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돈오선에서는 분
별을 내려놓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자리를 확인한다. 수행이 분별 내
려놓기의 노력이라면 깨달음은 분별 내려놓기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수
행과 깨달음에 내용적 차이는 없다. 다만 미숙함에서 완전함으로 익어
가는 일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닦음이라는 것과 깨달음이라는 것
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일은 아니다.
박산선사의 법문은 닦음과 깨달음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도 안 되지
만 그렇다고 닦음과 깨달음을 무시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일이 있어서
도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유위적 수행도 문제지만 무위적 방
일 역시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박산선사는 먼저 유위적
수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9지와 10지보살의 관조 실천을 비판한
다. 돌이켜 관조하는 수행을 한다면 관조하는 주체와 관조의 대상이 있
어야 한다. 이미 분별의 두 기둥을 세웠으므로 이것은 망상일 수밖에
없다. 망상을 닦아 깨달음에 도달할 길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박산선사는 무위적 방일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를 위해
등각보살의 설법을 예로 든다. 그것이 모든 중생들에게 공평하게 이익
을 주는 설법이라서 마치 고르게 적시는 비와 같고, 온 세상을 덮는 구
름과 같다 할지라도 여전히 설법의 주체와 대상이 설정되어 있다. 이미
분별의 두 축을 세웠으므로 남전스님과 같은 선사들은 그것을 인정하
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분별을 완
전히 내려놓는 차원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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