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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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으면 몸과 손을 흔들거나 눈을 깜빡이거나 혀를 빼물거나 눈

            을 부릅떠 보이는 경우, 밝고 신령스러운(昭昭靈靈) 실체를 강조하는 경
            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는 인용문과 같이 밝고 신령스러워 소소영영

            하다고 표현되는 이 경계가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이 실체가 없
            는 것임을 지적한다. 소소영영하게 보고 듣는 것을 실체로 삼는다면 그

            것은 결국 대상 사물을 분별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이것은 말
            할 것도 없이 망상분별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몸 안에 보고 듣는 주체로서의 실체를 상정한다면
            그것은 망상을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일로서 도적을 자식으로 인정하

            는 것과 같다. 이것이 현사스님의 경고이다. 『능엄경』에서는 소소영영함
            을 자기의 주인공으로 삼는 일을 가리켜 ‘두 번째의 달(二月)’                    228 이라 부

            른다. 그것은 자증분(見精)         229 일 뿐으로서 어쨌든 보는 주체를 설정하는
            일이므로 궁극의 진여본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현사스님은 우리의 몸 안에 있는
            궁극의 무엇을 추구하는 대신 우주법계에 가득 찬 금강의 몸체(金剛體)

            를 알아차리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햇빛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포함한 모든 것이 금강의 몸체가 드러난

            것임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소소영영한 알아차림이 필
            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본지풍광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

            렇다고 그것을 타기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른 알아차림(正知)과 바른




             228   楞嚴經集註』(X11, p.254a), “孤山云, 眞月喻眞心, 第二月喻見精, 水中影喻緣塵
                『
                分別. 第二月由揑目而成, 見精由迷眞而起, 旣分能所, 豈達一如, 不揑目則眞月宛
                然, 亡能所則眞心可了.”
             229   제8식의 자증분을 견정見精이라 부른다. 그것은 망상에 속하는 견분이나 상분은
                아니지만 대상에 의지하여 일어나는(依他起)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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