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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뒤에 인용문과 같은 결정적 법문을 내린다. 마음이 작동할 때
는 선정이 유지되지만 잠이 들어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 무심은 가짜 무
심일 수밖에 없다. 가짜 무심으로는 삶과 죽음을 대적하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담당스님 역시 성철스님이 강조
하는 숙면일여를 점검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①, ②와 같이 ‘담당이 물어 말하였다(湛堂問曰)’를 ‘담당준이
대혜종고에게 말하였다(湛堂準, 謂大慧杲曰)’로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문장
을 구성하였다. 본래 이 문장은 담당스님과 대혜스님이 묻고 답하는 문
답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성철스님은 그 구체적 상황을 지우고 담당스
님의 가르침을 드러내기 위해 문답형 문장을 서술형으로 바꾼 것이다.
③, ④, ⑤, ⑦, ⑧에서 ‘이爾’ 자를 ‘니你’ 자로 바꾸었는데 구분 없이
통용되는 글자이다.
⑥의 ‘주做’ 자가 생략되었다. 이것은 백화문에서 자주 쓰이는 ‘~하다’
라는 동사이다. 그런데 그 목적어가 되는 염고拈古와 송고頌古가 스스로
동사(拈, 頌)를 가지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의미상 중복이 일어난다. 성철
스님은 이것을 생략하여 중복을 피하는 동시에 구어체 문장을 문언문
으로 바꾸었다.
다음으로 ⑨와 같이 긴 문장이 생략되었다. 대혜스님의 선정이 한결
같지 못하다는 내용이다. 방장실에서 스승과 대화를 할 때는 그것이 유
지되지만 밖으로 나가면 그것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의 생략
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뒤의 문장과 내용상 중복되기
때문에 생략되었다. 의식이 또렷할 때는 선정이 유지되다가 잠만 들면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뒤의 문장인데 선정이 항일하지 못하다는 점
에서 내용상 중복된다. 주제를 바로 드러내는 문장을 선호하는 성철스
님의 입장에서 이를 생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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