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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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문장을 인용하면서 앞부분의 핵심 내용을 뒷부분으로 가져온 것
이다. 이것은 바로 뒤의 ‘또 말하기를(又曰)’과 관련이 있다. 원오스님이
‘또’ 말했다면 앞에서는 무슨 말을 했을까? 전체 문장을 모르는 독자
들로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원오스님이 앞에서 말한 것을
뒤로 가져와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④의 ‘이 지점에서 허둥지둥하였다(到這裏方始著忙)’는 구절은 대혜스님
이 스스로를 진단하는 말이다. 그것은 앞부분의 질문, 즉 죽음에 임해
전도망상이 되살아나는 일에 관한 질문(況地水火風分散, 衆苦熾然, 如何得
不被回換)과 내용상 중복되므로 생략한 것이다.
⑤에서는 ‘큰 입을 열다(開大口)’는 원문을 ‘크게 입을 열다(大開口)’로
바꾸어 표현하고, ‘크게 개구開口하여’로 번역문을 구성하였다. 원문의
‘큰 입을 열다’는 말에는 자기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 대혜스님이 스
스로를 가리키는 상황이므로 가능한 표현이다. 성철스님은 이 대혜스님
의 자기 회고를 객관적 표현으로 바꾸어 인용했으므로 대혜스님에 대
한 비하의 뜻이 담긴 ‘큰 입’이라는 말을 쓰기 곤란하다. 글자의 순서를
바꾼 이유이다.
⑥의 ‘제비除非’는 ‘불不’과 짝하여 ‘~인 경우라면 ~하지 않는다’는 뜻
을 형성한다. 이 문장에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깨어 있을 때와 잠
잘 때가 항상 한결같다는 것이 거짓이라면 나의 이 병을 제거할 필요가
없겠지만’의 의미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 관용어에서 ‘제비除非’를 빼도
뜻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이 구어체 특유의 관용어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빼면 저절로 문어체가 되므로 읽는 사람
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⑦에서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었다. 이로 인해 ‘내 스스로가(我自)’가 ‘내
가(自我)’로 의미의 축약이 일어났지만 전체적으로 의미의 변화는 없다.
제8장 오매일여 · 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