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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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斷除하여 종일토록 전혀 분별이 없어서 이소목조泥塑木雕와 흡사하

                니, 그러므로 장벽墻壁과 다름이 없다 하였다. 이 경계가 현전하면 정
                오正悟의 도가소식到家消息이 결정코 불원不遠하다.



                현대어역  달마스님이 말했다. “밖으로 모든 인연의 끄달림이 멈추고,

                안으로 마음에 동요함이 없어 마음이 장벽 같게 되어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과 뒤가 끊어지면 [이때부터] 무수한 번
                뇌가 단번에 사라지고 혼침과 산란을 말끔히 뽑아내 [움직여도 움직

                이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은 줄 모르며,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더
                워도 더운 줄 모르며, 차를 마셔도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먹는 줄 모르게 되어] 종일토록 멍청한 바보와 같이 마치 흙으로 빚
                거나 나무로 깎은 인형과 같아진다. 그래서 담벼락과 다름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바로 고향집에 도달하리라는 징
                조로써 틀림없이 구경의 자리에서 멀지 않다.



             [해설]  고봉원묘스님은 깨달음의 높은 경지뿐만 아니라 목숨을 내놓

             는 철저한 수행으로도 유명한 선사이다. 스님은 모든 분별을 내려놓은
             철저한 무심의 차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결국 어디에 안심

             입명하는지를 주목하는 공부를 밀고 나가 5년간을 바보처럼, 담벼락처
             럼 지낸 끝에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한다.

                깨달음에 이른 뒤에는 항주 천목산 절벽의 석굴에 은거하였다. 이곳
             은 사다리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는 절벽에 조성한 좁은 석굴이었다.

             고봉스님은 이곳을 죽음의 관문(死關)이라 부르며 15년을 나오지 않았
             다. 그 수행과 깨달음의 철저함이 이와 같았다. 고봉스님의 이러한 철저




                                                            제9장 사중득활 ·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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