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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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짧은 글 속에는 마음 공부의 핵심이 빠짐없이 담겨 있어 ‘심요법
문’으로도 불린다. 징관스님의 뒤를 이어 화엄종의 제5조가 되는 종밀스
님은 이 글을 중시하여 별도의 주석을 달아 유포한 바 있다.
마음이 곧 부처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무
엇보다도 깨달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분별에 걸린 사람은 이 일
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깨달음이 있고 앎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자
각하는 주체가 남아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
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비춤과 깨달음이 없다고 말한다면 캄캄한 무기
에 걸린 것이므로 이 또한 옳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징관스님은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자리, 앞과 뒤가 끊어
진 자리를 제시한다. 그 비춤의 본체는 주체와 대상이 무너진 자리에
홀로 서 있다. 그래서 비춤의 본체가 홀로 독립한다고 말한다. 이때 습
관적으로 비춤의 본체를 추구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공부는 다시 분별
에 떨어진다. 망상을 버리고 진여를 취하는 일이라 해도 그것을 지향하
는 순간 우리의 몸에서 그림자를 떼어내려는 것과 같아 헛수고가 될 뿐
이다. 그런데도 이 기본을 망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일체의 분별을
내려놓고 비춘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을 때 진정한 쉼이 일어난다. 이것
이 징관스님 법문의 핵심이다.
비춤의 본체가 홀로 독립하는 일은 분별을 떠난 7지와 8지의 공통
된 특징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그 무루의 관찰지혜가 한결같이 청정한
지(一向淸靜), 끊김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7지와 8지로 나누기도 한다. 요
컨대 7지에서는 비춤이 한결같지 않으므로 망상을 버리고 진여를 구하
려는 노력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자나깨나 한결같이 8지 이상의 대무심경계 이후라야 견
성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견성은 대무심경계 이후의 일로서
제9장 사중득활 ·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