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4 - 정독 선문정로
P. 454

다.’ 내가 다시 여쭈었지. ‘문득 나무가 넘어지고 등넝쿨이 말라 버리

               게 되었을 때를 만났다면 어떻겠습니가?’ 법연스님이 말씀하셨다. ‘서
               로 따라오겠지.’”] 이 늙은이가 [그 예화를 듣고는] 바로 알아차리고

               말하였다. “제가 알아차렸습니다.” 스승님이[노스님이] 말씀하셨다. “아
               무래도 그대가 공안을 아직 뚫지는 못했을걸.” [이 늙은이가 말하였

               다. “스님께서 공안의 예를 들어보십시오.”] [이에 노스님이] 연달아서
               헷갈리는 공안들을 뒤죽박죽 한 뭉치 예로 들어 시험했지만 나는 두

               세 마디에 모두 절단해 버렸다. 마치 태평무사한 시절에 길이 있으면
               바로 가는 것과 같아 걸리고 막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노스님이 말

               씀하셨다. 이제야] “내가 그대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겠구나.”



            [해설]  대혜스님은 스승 원오스님의 회상에서 두 번의 깨달음을 체험
            한다. 앞과 뒤가 끊어지고 모양에 동요되지 않는 무심을 체험한 것이 그

            하나이고, 그 무심경계에 빠져 있다가 화두참구를 통해 다시 되살아나
            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 다른 하나이다. 앞과 뒤가 끊어지는 무심경계의

            체험은 ‘모든 부처님이 몸을 드러내는 곳’에 대한 답변에서 일어났다. 이
            에 대해 “동쪽 산이 물 위를 간다.”라고 한 운문스님의 답변이 있었지만,

            원오스님은 만약 자기라면 “훈풍은 남쪽에서 불어오고, 전각이 한결 시
            원해졌다고 답하겠다.”라고 했다. 운문스님의 답변은 상대적 차원을 무

            너뜨렸고(遮), 원오스님의 답변은 상대적 차원을 되살렸다(照). 대혜스님
            은 원오스님의 이러한 법거량을 듣고 온몸에 땀이 나면서 앞뒤가 끊어

            지는 체험을 한다. 스스로 목말라하던 무심경계를 체험한 것이다.
               그렇지만 스승은 대혜스님의 이 무심경계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자

            아를 온전히 허문 죽음의 자리라는 점에서는 대견하지만 화두참구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무심에 머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454 · 정독精讀 선문정로
   449   450   451   452   453   454   455   456   457   458   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