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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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줄 믿어야 한다.” 이 늙은이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얻은 자리만
가지고도 이미 충분히 상쾌하고 활발한데 다시 알아차릴 만한 일이
없다.’ 노스님은 나를 시자실에 있게 하였는데 시봉의 의무가 없었고,
시자로서 매일 사대부들을 안내하여 서너 차례 뵐 기회가 있었다.]
매번 입실할 때마다 오로지 ‘있음과 없음의 말들은 마치 등넝쿨이 나
무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는 공안을 예로 드셨는데, 말을 하려고 입
을 열기만 하면 바로 “아니야!”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반년 동안 오
로지 참구만 하였다. 하루는 여러 관원들과 함께 방장실에서 저녁
공양을 드는 참이었는데 나는 손에 젓가락을 들고는 밥 먹는 것조
차 잊어버렸다. 노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친구는 황양목 같은 참선
을 하고 있구만.”] 내가 [마침내] 비유를 들어 말씀드렸다. [“스님!] 이
도리는 흡사 개가 뜨거운 기름솥을 보고 있는 것과 같아서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버리고 떠나려 해도 떠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
다.” [노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의 비유가 정말 좋구나. 바로 그것
이 금강의 올가미요 목에 걸린 밤송이다.”]
하루는 스승님이 나무가 넘어지고 등넝쿨이 마르면 서로 따르게
된다고 한 공안을 예로 들었다. [하루는 노스님이 이런 질문을 받으
신 적이 있었다. “스님께서 당시 오조법연스님 회상에 있으면서 이러
한 질문을 하셨을 때 오조법연스님은 어떻게 답변하셨습니까?” 스
님이 대답하지 않으시기에 이 늙은이가 말씀드렸다. “스님께서 그때
는 독자적으로 질문하지는 않으셨을 테고 대중들 앞에서 질문해야
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스님
이 말씀하셨다. “내가 여쭈었지. ‘있음과 없음의 구절들이 마치 등넝
쿨이 나무에 의지하는 것과 같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법연스님이 말
씀하셨네. ‘묘사하려 해도 묘사할 수 없고, 그리려 해도 그릴 수가 없
제9장 사중득활 ·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