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8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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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과 문답이 이미 생략된 상황이므로 한 구절 더 생략해도 무리가 없

            을 것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④의 ‘비유하자면(譬)’은 그 뒤의 ‘~과 같다(如)’와 의미상 중복되므로

            생략하였다. ‘비여譬如’는 구어체에 많이 쓰이고, ‘여如’는 문언문에 많이
            쓰인다. 성철스님이나 한국의 한문 독자들은 문언문에 익숙하므로 이

            를 문언문화하여 전달의 효과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성철스님은 설법
            의 표현에 있어서나 문장의 구성에 있어서나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

            나는 단도직입의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것이 한 글자이든, 한 구절
            이든, 한 문단이든, 여러 문단이든 일단 군말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생

            략해 버리는 것이다.
               ⑤의 ‘그때 온몸에서 땀이 솟아났다(當時通身汗出)’를 생략하였다. 새

            로운 경계 체험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묘사한 구절이다. 그런데 그것은
            ‘모양에 따른 동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動相不生)’는 무념의 체험에서 일

            어나는 부수적 경계이다. 의미상 중복되므로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더
            구나 이 문장은 그 구체성으로 인해 더 기억에 남게 된다. 설법의 핵심

            이 흐려지고 경계의 체험만 남게 되는 것이다. 생략이 행해진 이유다.
               ⑥의 ‘하루는 스승의 방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는데(得一日去入室)’가 생

            략되었다. 대혜스님이 설법을 듣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
            이 설법의 핵심과 무관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고 보아 생략한 것 같다.

               ⑦에서 ‘노스님이 말하기를(老和尙曰)’을 ‘스승님이 이르기를(老師云)’로
            바꾸었다. 노스님은 구어체로서 친근한 느낌이 있고 스승님은 정중한

            느낌이 있다. 또 ‘왈曰’은 직접화법에 쓰이고, ‘운云’은 발화된 내용을 서면
            어로 전환하여 기술하는 데 쓰인다. 현대문으로 표현하자면 ‘왈曰’로 전

            달되는 말은 큰 따옴표(“ ”)로, ‘운云’으로 전달되는 말은 작은 따옴표(‘ ’)
            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 설법을 엄숙한 분위기, 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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