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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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과 없음의 말들은 마치 등넝쿨이 나무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는 공

             안을 들어 재차 그를 화두참구의 자리로 몰고 간다. 대혜스님이 스승과
             함께 저녁 공양을 하면서 젓가락을 들고 밥 먹는 일을 잊었다는 것은

             화두참구가 그만큼 간절해졌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마치 개가 뜨거운
             기름솥을 보고 있는 것과 같아서 핥고 싶지만 뜨거워서 혀를 대지 못

             하고, 그렇다고 버리고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 비유된다.
                원오스님은 이 화두참구의 진실성을 인정한다. 벗어버릴 수 없는 금

             강의 올가미와 같고, 목에 걸린 밤송이와 같은 그런 차원이라야 진실
             한 화두참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금강의 올가미와 목에 걸린 밤

             송이의 비유는 은산철벽, 쇠뿔에 들어간 쥐(老鼠入角) 등과 함께 수승한
             화두참구의 경계를 표현하는 관용어에 해당한다.

                대혜스님은 이렇게 공부가 익은 뒤, 원오스님의 입을 통해 ‘나무가
             넘어지고 등넝쿨이 말라 버린 자리’에 대한 오조법연스님의 답변을 듣게

             된다. “서로 따라온다.”는 법연스님의 답변이 그것이었다. 이 말끝에 대
             혜스님은 공空조차 내려놓는 공공空空의 중도 도리를 몸으로 체득한다.

                이와 같이 대혜스님은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모양에 흔들리는 차원
             →움직이는 생각들이 사라지고 고요한 무심에 머무는 차원→고요한 무

             심에서 화두참구를 밀고 나가 다시 되살아나는 차원에 도달한다. 궁극
             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성철스님은 고요한 무심에 머물지 않고 화두

             참구를 강화하여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차원에 이른 대혜스님의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문장을 인용하였다.

                인용문에 표시한 것과 같이 생략된 부분이 절반을 넘는다. 이 인용
             문은 성철스님 문장 인용의 다양한 특징들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

             는 예라 할 수 있다. 우선 전체 문장의 인용 의도는 일념불생의 무심에
             이른 자리에서 다시 되살아나야 진정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는 점을




                                                            제9장 사중득활 ·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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