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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문장 인용의 취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 흥미로운 사제 간의 밀고
당기는 상황 묘사를 생략한 것이다.
⑫와 같이 원문에 없는 ‘매每’ 자가 추가되었다. 대혜스님의 입실이
한두 번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윤
문의 일환이다.
⑬의 긴 문장이 생략되었다. 앞뒤가 끊어진 체험을 한 뒤 반년 동안
화두참구에 몰두하여 공양하는 자리에서 먹는 일까지 잊고 있다가 스
승에게 황양목黃楊木과 같은 참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황양목은 거꾸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더디게 자라는 나무이
다. 원오스님이 보기에 대혜스님의 참선이 그처럼 더디게 진행되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무심의 편안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새롭게
화두참구를 강화해 간 결과이다. 그러므로 황양목과 같은 참선을 한다
는 원오스님의 말에는 칭찬의 뜻도 숨어 있다.
이에 대혜스님은 자신의 이러한 화두일념의 간절함과 막막함을 뜨거
운 기름솥을 앞에 두고 혀를 대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포기하고 떠나
지도 못하는 개의 상황에 비유한다. 성철스님은 이 절묘한 비유를 살리
는 대신 밥 먹기조차 잊었던 구체적 상황의 묘사를 생략하였다. 하나
는 비유이고, 하나는 구체적 상황의 묘사이다. 둘 다 성철스님이 반기
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는 두 구절 중 하나만을
선택한 것이다. 하나만 가지고도 설법의 핵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⑭와 ⑮가 생략되었다. 스승 원오스님과 제자 대혜스님의 직접화법
이 갖는 현장성을 지우기 위한 조치이다. ⑭의 ‘마침내(遂)’는 황양목 같
은 참선을 한다는 스승의 비판에 대해 ‘바로’ 대응했음을 드러내는 말
이고, ⑮의 ‘스님(和尙)’은 대혜스님이 직접 스승 원오스님을 부르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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