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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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대신 ‘하루는 스승님이 나무가 넘어지고 등넝쿨이 마르면 서로 따

            르게 된다고 한 공안을 예로 들었다(一日에 老師가 擧樹倒藤枯相隨來也어늘)’
            는 축약문을 재구성하여 제시한다.

               공안의 문답과 오도인연은 모든 조사 어록의 핵심이고, 특히 그 묻고
            대답하는 흥미진진한 현장성은 어록의 특징이다. 성철스님은 이것을 모

            두 생략하였다. 구어체 문장을 꺼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장감 넘치는
            묘사로 인해 진정한 깨달음을 향한 대혜스님과 원오스님의 피 튀기는

            전투 현장을 하나의 연극처럼 관람하는 일이 있을까 우려하였기 때문
            이다. 송대 이후 연극과 같은 문자 유희에 빠진 문자선의 폐단이 있었

            고, 우리의 수행 현장에도 말장난 같은 법거량이 성행하는 폐단이 있었
            다. 법거량의 흥미진진한 현장성을 지워 버린 것은 이러한 폐단을 바로

            잡고자 하는 고심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⑳의 ‘그 말을 듣자마자(纔聞舉)’가 생략되었다. 나무가 넘어지고 등넝

            쿨이 마르면 어떻게 되느냐고 다그치는 질문에 법연스님은 “서로 따라
            오겠지(相隨來也).”라고 대답한다. 원오스님이 이러한 스승의 말을 듣고

            바로 깨달았다는 뜻이다. 조사선은 말끝에 깨닫기를 특징으로 한다. 그
            렇지만 그것은 도저한 화두참구의 끝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

            런 점에서 말끝에 일어나는 깨달음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다. 성철
            스님은 이 구절을 생략함으로써 깨달음을 우연한 사건으로 보는 오해

            를 차단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㉑의 ‘노스님(老和尙)’을 ‘스승님(老師)’으로 바꾼 것은 친근한 구어체적

            호칭을 정중한 호칭으로 바꾼 것이다.
               ㉒의 ‘이爾’ 자를 대신하여 ‘니你’ 자를 썼다. 두 글자 모두 ‘너’를 지칭

            하는 2인칭 대명사로서 통용 관계에 있다.
               ㉓의 ‘공안公案’에 ‘안案’ 자가 누락되었다. 1981년 초판본에 바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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