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併.)”로 되어 있다.

               수행자는 수행의 성숙에 따라 전에 없던 경계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
            고 대부분 그 신묘한 경계에 매혹되어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부처님

            처럼 끝없는 자기 점검과 철저한 내려놓음, 그리고 새로운 나아감을 실
            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때 선지식의 안내가 필요하다. 설암스님도

            고요한 무심의 경계에 도달하기까지 도반과 선배의 안내를 받았다고 회
            고한다.

               그러나 꿈조차 없는 숙면시에 항일하지 못한 상황을 맞이하여 이것
            을 뚫지 못한다. 그래서 당시 이것을 일깨워주는 스승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뜻에서 ‘애석하게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구절이 붙
            게 된 것이다. 이 구절을 적용하면 현대어역에 보인 것처럼 ‘모양에 따

            른 동요가 없는(動相不生)’ 고요함이라 해도 여전히 보는 주체(能)와 고요
            함이라는 대상(所)이 둘로 나뉘어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병통에 해당한

            다. 이것을 스승이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생략하면 이 병
            통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된다. 성철스님은 보편적 원리를 드러

            내는 것을 선호한다. 이에 비해 구체적인 상황 묘사에 대해서는 별 흥
            미가 없다. 그 흥미로운 상황이 눈길을 붙잡아 정작 받아들여야 할 메

            시지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②의 ‘향向’ 자가 생략되었는데 ‘이곳을 지향하여(向) 계속 머물러 있

            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글자이다. 1981년 초판본
            에는 이 글자가 그대로 있으므로 편집상의 오류에 해당한다. 복원되어

            야 한다.
               ③의 ‘꿈을 꾸거나, 생각하거나, 보거나, 듣는 일이 없어지는 자리가

            되면(無夢想見聞地)’의 구절은 『종범』의 표현에서 ‘문聞’과 ‘견見’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출전으로 제시된 『설암어록』에는 이것이 “꿈도 없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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