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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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말하는 것이므로 뜻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이를 통해 절제된 문장
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 나아가 수행자들에게 무엇인가 얻었다는 생각
이 있으면 티끌조차 내려놓아야 한다는 평소의 주장을 드러낼 수 있다
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⑪과 같이 ‘이때부터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의혹이 없어지고, 부처
와 조사에 대한 의심이 사라졌다(從此不疑生, 不疑死, 不疑佛, 不疑祖)’는 표
현이 생략되었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으므로 태어남과 죽
음에 대한 의혹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므로 부처와 조사가 다르지 않을까 하던 의심이 사라진 것이
다. 생략된 구절은 이러한 의미를 전달한다. 원래 성철스님도 이러한 중
도불이의 법을 설하는 데 철저하다. 그렇지만 진정한 무심의 성취 없는
불이의 표현은 모두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그리하여 설암스님이 드디어 그 스승인 경산무준스님과 동일한 차원에
서게 되었다는 말로 이 불이의 표현을 대신하고자 한 것이다.
⑫의 ‘견見’ 자를 생략하였다. 이것을 생략하지 않으면 ‘볼 수 있었다
(得見)’는 뜻이 되고, 이것을 생략하면 ‘얻었다(得)’는 뜻이 된다. 생략하는
것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을 표현하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이다.
⑬에서는 ‘주장자(拄杖)’를 ‘몽둥이(棒)’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몽둥이
30방은 선가의 관용어에 가깝다.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어 읽기에 편하
도록 한 것이다.
한 가지 이 구절과 관련하여 음미해 볼 일이 있다. 이것은 설암스님
이 스스로의 둔함을 자책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큰 힘과 근기를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허다한 곡절을 거칠 일이 없는 일” 이라 생각했
261
『
261 雪巖祖欽禪師語錄』(X70, p.607b), “何故, 若是大力量大根器的人, 那裡有許多曲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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