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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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없고, 들음도 없고, 봄도 없는 자리(無夢無想無聞無見之地)”로 표현되어
있고, 『불조강목』에는 “꿈과 생각이 소멸되어 사라질 때(泯無夢想時)”로
되어 있으며, 『선관책진』에는 이 구절이 없다.
이 구절을 따로 『종범』에서 가져다 추가한 것은 이유가 있다. 설암스
님은 당시 깨어 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가 일여하지 못한 문제 258 에 막
혀 있었다. 대혜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잠이 들면 주재하는 작용이 사라
지기 때문 259 이다. 몽상견문夢想見聞이 없다는 것은 성철스님식으로 말
하자면 숙면시에 해당한다. 그런데 『선관책진』에는 단순하게 ‘매번 잠이
들면(每於睡著)’으로만 되어 있어 몽중시인지 숙면시인지를 가릴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다른 문헌에서 별도로 해당 문단을 가져
와 그것이 꿈이 없는 숙면시임을 밝힌 것이다. 나아가 이 문장에 대해
성철스님은 ‘매양 숙면하여(每於睡著)’와 같이 설명식으로 번역함으로써
그것이 숙면시에 일여하지 못한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성철스님은 몽중일여와 숙면일여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
러므로 꿈이 없는 숙면을 표현하는 이 구절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다
만 함께 나열해 놓고 보아도 『설암어록』은 표현의 절제가 부족하고, 『불
조강목』의 표현은 너무 간략하다. 이에 그 중간형인 『종범』의 구절을 가
져다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④의 긴 구절이 생략되었다. ‘의미로 이해되는 공안은 깨달아 알 수
있었지만, 은산철벽과 같이 길이 끊긴 것은 여전히 알 수 없었으며, 비
『
258 雪巖祖欽禪師語錄』(X70, p.607b), “古人有寤寐一如之語, 又却透不得, 眼若不
睡, 諸夢自除, 心若不異, 萬法一如之說, 又都錯會了也. 凡古人公案, 有義路可以
咬嚼者, 則理會得下, 無義路, 如銀山鐵壁者, 又却都會不得. 雖在無準先師會下,
許多年, 每遇他開室, 舉主人公話, 便可以打箇兆 孛跳, 莫教舉起衲僧巴鼻, 佛祖爪
牙, 更無你下口處, 有時在法座, 東說西說, 又並無一語, 打著我心下事.”
『
259 大慧普覺禪師語錄』(T47, p.936a), “只是睡著, 已作主宰不得.”
제9장 사중득활 · 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