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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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행하는 바가 없게 되었다.
[해설] 고봉스님은 20살에 깨달음에 뜻을 두고 3년 기한으로 참선
을 시작하여 24살에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의 공부가 얼마나 치열했던
지 함께 참선하던 도반이 스스로 공부하는 것보다 그의 견성성불을 돕
는 것이 더 뜻있겠다고 생각하여 조석으로 시봉한 일까지 있었다. 설암
스님에게서 공부했는데 참문할 때마다 ‘누가 이 죽은 시체를 끌고 왔는
가(阿誰與你拖箇死屍來)’를 묻고 대답하려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려
치기를 반복했다. 이후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하나는 어디
로 돌아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 하는 화두에 의정이 일어나 깊은 선정
에 들었고, 오조법연스님의 진영을 보다가 문득 주체와 대상이 사라져
거울이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견처를 얻었다. 기왕의 화두들을 점
검해 보아도 틀림없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설암스님에게 이것을 인정받
지 못했다. ‘꿈도 없는 잠이 들었을 때 주인공은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
에 막혔기 때문이다. 그 뒤 5년간 화두의심으로 세월을 지내다가 도반
의 목침이 떨어지는 소리에 깨달았다. 이상이 인용문의 내용이다. 그러
니까 최초의 깨달음으로 모든 공안을 타파했지만 숙면일여가 아니라면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설암스님의 지적을 받아 다시 5년간 공
부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고봉스님이 24살 때 경험한 최초의 깨달음을 ‘몽중일여
의 가짜 죽음(假死)’이라 규정한다. 그 가짜임을 판정하는 기준이 ‘깊이
잠들었을 때도 일여한가’였다는 것 262 이다.
인용문의 출처를 『고봉어록』으로 밝히고 있으나 『선관책진』을 크게
262 퇴옹성철(2015), pp.217-218 참조.
제9장 사중득활 · 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