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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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직 대사일번大死一番하여서 다시 대활大活하여야 한다.



                현대어역  크게 죽은 사람에게는 불법이니 진리니 하는 것이 전혀 없

                어서, 현묘함과 득실과 시비와 장단이 여기에서는 오로지 이처럼 쉬
                어질 뿐이다. 옛 도인들은 이것을 평지에서 죽어 나간 사람이 [무수

                하니] [가시넝쿨 숲을 지날 수 있어야 장한 솜씨라 할 수 있다고 했
                다. 또한] 반드시 그것을 투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

                금 사람들로서는 이러한 차원에 도달하는 것만 해도 이미 어려운 일
                이다.] 혹 의지하는 것이 있거나 이해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에 도달

                할 수 없다. 모철慕喆스님은 이것을 보는 자리가 말끔하지 못하다고
                했고, 스승님 오조께서는 이것을 목숨의 뿌리가 끊어지지 않은 것이

                라 하셨다. 반드시 한 번 크게 죽어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해설]  인용문은 『벽암록』 41칙, 조주스님과 투자스님 간에 ‘크게 죽
             은 사람’을 주제로 오간 법거량에 대한 평설을 가져온 것이다. 크게 죽

             은 사람은 무심을 성취한 사람을 가리킨다. 시비장단은 물론 불법이니
             진리니 하는 것에 걸리지 않는 뛰어난 경지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고인

             물과 같아 현실적 실천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높은 장대
             끝에 도달했다 해도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요구하는 선사들

             의 언설이 따라붙는다. 대위산大潙山 모철스님은 이것을 보는 자리가 말
             끔하지 못하다 했다. 아직 보는 주체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보는 주체

             가 있으면 바로 그 상대편에 대상이 세워진다. 원래 이 일은 나에 대한
             집착,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고 무명을 소멸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이 수승한 무념의 자리에 매혹되다 보면 무명에서 파생된 주체
             의 입장(見分)이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 안주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옛




                                                            제9장 사중득활 ·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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