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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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던 집필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
인다.
②와 같이 ‘가시넝쿨 숲을 지날 수 있어야 장한 솜씨이다(過得荊棘林
是好手)’는 구절이 생략되었다. 이 평지와 가시넝쿨 숲의 말은 운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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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말 이다. 이에 의하면 평지는 말과 의미가 통하는 자리, 가시넝쿨
숲은 은산철벽과 같이 말과 의미의 길이 완전히 끊긴 차원이다. 무심이
이해가 가능한 평지의 차원이라면 무심조차 인정하지 않는 가시넝쿨의
숲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는 길이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비유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오로지 무심에 매혹되어 향상의 공부를 멈추는 일이 있
다는 점을 경고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은산철벽의 매혹적인 구절을 생
략한 이유에 해당한다.
③의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사람들로서는 이러한 차원에 도달하는
것만 해도 이미 어렵다(雖然如是, 如今人到這般田地, 早是難得)’는 구절이 생
략되었다. 성철스님은 구경각이 아닌 중간의 경계에 대해서는 최소한
의 의미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점검하는 경우이든, 스승으로
서 제자를 인도하는 경우이든 마찬가지다. 궁극의 자리가 아닌데 그것
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결국 공부의 완성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죽는 일에 비유되는 무심의 성취에 대한
유보적 인정을 담고 있는 이 구절을 생략해 버린 것이다.
④에서는 ‘혹약或若’을 ‘혹或’으로 줄여서 표현하였다. 두 표현 모두 ‘혹
시 ~라면’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성철스님은 생략해도 좋을 글자는
대부분 생략하는데, 이러한 원칙에 의해 생략된 글자이다.
⑤와 같이 ‘이해하는 일이 있다면(有解會)’의 ‘유有’를 생략했는데 앞에
271 雲門匡眞禪師廣錄』(T47, p.55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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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사중득활 · 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