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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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살위大菩薩位”       268 라고 유식과 보살지위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취를 깨달음으로 인정하지 않고 크게 깨칠 때
            까지 거듭 앞으로 나아가는 향상일로의 자세이다. 이것은 또한 성철스

            님이 강조한 바, 자기를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일은 거기에서 다시 더 철저하게 죽는 일을 통해 가능하다. 석가모니가

            극단의 고행 끝에 우유죽을 받아드는 입장의 변화를 보였지만 그것은
            타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일찍이 알라라깔라마의 무소유처정無

            所有處定, 웃다까라마뿟다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도달하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던 치열한 수행 정신의 일관된 구

            현이었다. “10지보살도 불성을 완전히 알고 보지 못한다.”                    269 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머물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언구의 의심을 강화하여 크게

            깨치는 길     270 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성철스님이 제시하는 길 안내이
            다. 이러한 인용문에서 표시한 것과 같은 손질이 가해졌다.

               ①의 ‘무수하다(無數)’의 생략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게 죽어 일체
            의 시비장단을 쉬게 되는 경지는 보통의 경지가 아니다. 그러나 옛 도인

            들은 이에 대해 “평지에서 죽어 나간 사람이 무수하다.”라고 경고한다.
            실제 수행의 현장에서 무심의 수승한 경계에 퍼져 앉아 향상을 멈춘

            이가 무수하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 구체적 사례를 드는 방식의 표
            현에서 ‘무수無數’를 생략한다. 이로써 그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하

            나의 원리가 된다. 성철스님은 경험이나 사례를 통해 선의 담론을 이끌
            어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그것을 하나의 정리된 원리

            와 원칙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문정로』를 통해 선의 수증론


             268   퇴옹성철(2015), p.219.
                『
             269   大般涅槃經』, 권제8(T12, p.411c), “如是菩薩,位階十地,尙不了了知見佛性.”
             270   퇴옹성철(2015),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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