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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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하여 항상 있고, 일체 만법이 생기한 그때에 공공활활空空豁豁하여

                항상 적적寂寂하니 참으로 사중활死中活이요 활중사活中死라 함을 알
                것이다.”



                현대어역  조주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크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때는 어떠한가?” 투자스님이 말하였다. “밤에 움직이지 않되,
                새벽에 도달해야 합니다.”

                굉지스님이 소참법문에 이 대화를 들어 말하였다. “이러한 때를 안다
                면 곧 ‘밝음 가운데 어두움이 있으니 어두움끼리만 서로 만나지 않게

                하라. 어두움 가운데 밝음이 있으니 밝음끼리만 서로 보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법이 멸진하는 자리, 그때 분명하

                게 항상 존재하고, 모든 법이 생성하는 그때 텅 비어 항상 고요하다.
                죽음 가운에 살아남이 있고, 살아남 가운데 죽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해설]  조주스님은 투자산投子山 대동스님의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
             간다. 조주스님(778-897)과 투자스님(818-914)은 40살 차이가 난다. 또

             조주스님은 남악회양의 계열에 속하고 투자스님은 청원행사의 계열에
             속해서 사승 관계도 다르다. 다만 이 시기에는 사승 관계의 벽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넘나들며 배우기도 하고, 상호 간에 기탄없
             는 법거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조주스님과 투자스님의 법거량에도 그

             러한 기탄없음이 발견된다.
                여기에서 조주스님이 제시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일념

             불생의 무심경계를 투과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투자스님은 “밤
             에 움직이지 않되, 새벽에 도달해야 한다.”라고 답한다. 이것은 이후 유




                                                            제9장 사중득활 ·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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