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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다. “여울 아래에서 받아 잡으면 되지.”
또 『능엄경』에서는 “고요함으로 들어가 고요함에 합치되는 것은
식음識陰의 차원에 속한다.”고 했고, 또] 『능가경』에서는 말했다. “모
양의 일어남은 집착이고, 생각의 일어남은 망상이며, 미세한 흐름의
일어남은 망상에 휩쓸려 흐르고 굴러가는 것이다. 애써 공부하지 않
아도 되는 무공용지에 도달한다 해도 여전히 미세한 흐름 속에 있는
것이므로 이 3세의 흐름이 일어나는 차원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쾌활하며 자재할 수 있다.” [그래서 위산스님이 앙산스
님에게 묻는다. “혜적, 너는 어떻느냐?” 앙산스님이 대답했다. “스님
께서는 저의 견해를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해와 실천의 상응에
대해서 물으시는 겁니까? 만약 이해와 실천의 상응을 물으시는 것이
라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견해에 대해 물으신다면 마치 이쪽
병의 물을 저쪽 병의 물에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한 곳의 스승이 될 만하다. 조주스님이 “급류 위에서 격구시합을 한
다.”고 했는데 그것만 해도 걸림 없는 활용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급류 위에서 공을 치면 눈 깜빡할 사이에 바로 지나가 버리는 것이
다. 예를 들어 『능엄경』]
경전에서는 ‘급류의 물을 바라보며 고요하다고 여기는 일’이라고
했다. [옛사람이 말했다. “마치 빠르게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은 흐를
뿐 멈추는 일이 없어서 각각 서로 알지 못한다. 모든 현상이 또한 이
와 같다.” 조주스님이 대답한 자리의 그 뜻이 완전히 이와 같다. 그
중이 투자스님에게 다시 물었다. “급류 위에서 격구시합을 한다고 하
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투자스님이 대답한다. “생각생각이 흐름
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지.” 자연스럽게 그 질문하는 자리와 딱 맞
아떨어지고 있다. 옛사람의 행적은 면밀해서 대답을 하게 되면 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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