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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오매에 일여한 8지 이상의 자재보살위에 들었다 하더라도
이는 구경이 아니다. 도리어 수행인을 매몰시키는 마구니의 경계,
귀신의 소굴이니 여기서 다시 용맹심을 일으켜 근본무명을 끊고 진
정한 무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전엔 종문의 종사가 아니며 눈
밝은 납자라 할 수 없다. 285
이상과 같은 맥락을 갖는 인용문에서 다음과 같은 생략, 추가, 변환
이 행해졌다.
①의 ‘여如’ 자는 성철스님이 추가한 것이다. 질문하는 스님은 단순히
갓난아이에게 제6식이 작용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이 도
달한 경지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점검을 받으려는 것이 그 질문의 의도
였다. 따라서 갓난아이의 상대적으로 순결한 제6식의 작용이 수행자의
무심경계에 대한 비유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①
의 ‘~한 것처럼(如)’을 추가한 것이다.
②에서는 ‘해아孩兒’를 ‘해자孩子’로 바꾸었다. 모두 어린아이라는 뜻으
로 통용하는 단어이고 원문에도 구분 없이 쓰고 있다. 단어를 통일하
고자 하는 의도로 일어난 교정으로 보인다.
③의 ‘그러나(然)’를 생략한 것은 앞의 문장에 ‘수雖’가 있어서 ‘비록 6
식을 갖추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으나’의 뜻을 구성하기 때문
에 ‘그러나’가 없어도 의미가 전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말 현토까지 달려 이중 삼중의 ‘그러나’가 들어와 문맥을 매끄럽지 않게
하는 경향도 있다. 성철스님은 문장의 대의만 취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
에 고민 없이 이를 생략한 것이다.
285 퇴옹성철(2015),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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