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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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원명정심圓明精心은 『능엄경』의 고유한 표현으로서 특별히 바꿀 이유
는 없어 보이지만 성철스님은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정심精心’을 ‘정심
淨心’으로 바꾼다. 정심精心은 잡티가 사라진 순수한 정수로서의 마음이
고, 정심淨心은 시비분별이 사라진 청정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의미상의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어감에 있어서 정심精心, 즉 잡티 없는 정수로서의
마음은 그 본래성이 드러나는 경향이 있고, 정심淨心, 즉 청정한 마음은
그것을 깨끗이 하는 수행의 노력이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의 한 티끌을 떨어낼 때까지 끝없는 수행을 강조하는
것이 성철선의 핵심이므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③에서는 유리의 청정한 특성을 나타내는 ‘정淨’ 자가 생략되었다. 성
철스님의 번역문에 ‘청정한 유리琉璃’로 되어 있으므로 옮겨 쓰는 과정
에서 일어난 탈자에 해당한다. 1981년 초판본에 바로 되어 있었으나
1993년에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오류가 일어났다. 복원되어야 한다.
④에서는 다양한 지위와 점차를 생략하였다. 원교에서는 초발심이
그대로 정각이라고 말한다. 진여의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 근기에 따라, 혹은 그 철저성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지
위를 설정할 수 있는데 교가에서는 이것에 의미를 두고 자세한 설명을
전개한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절대적 깨달음, 완전한 견
성만을 인정한다. 조금이라도 미완의 흔적이 있다면 다시 화두를 들어
가행정진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 주장한다. 그러므
로 식음의 멸진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완전하게 밝은 마음(圓明精心)에 등
급을 매기는 일에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교학의 제반 단계는 성철스
님의 손을 거치면 모두 ‘등호(=)’로 연결된다. 이 인용문도 ‘식음의 소멸=
애초부터 완전하게 밝은 마음=금강과 10지의 초월=등각의 초월=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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