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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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나 참회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처님이 열반을 앞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사세왕은 절망하여 괴로워한다.
이때 사라쌍수 나무 아래 있던 부처님이 그 간절한 뜻을 알고 아사
세왕을 위해 무량겁 동안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가섭이 이
말을 듣고 왜 무량중생이 아니라 아사세왕을 위해 열반에 들지 않겠다
는 것인지를 묻는다. 부처님은 아사세왕처럼 5역죄를 범한 중생, 무위
에 들지 못한 중생을 위해 부처가 존재하는 것임을 말한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다.
아사阿闍는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고, 세世는 원한을 뜻한다. 불성
이 생겨나지 않으므로 번뇌와 원한이 생긴다. 번뇌와 원한이 생기
므로 불성을 보지 못한다. 24
번뇌가 생기지 않으면 불성을 보게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인용
문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생기지 않음(不生)’이라
는 단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미세한 번뇌망상까지 멸진
한 대무심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굳이 『대열반경』의 문장을 인용한
것은 견성이 곧 대열반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하여 무심, 견
성, 구경각에 대열반이 ‘등호(=)’로 연결된다.
선종의 돈오견성과 부처님의 구경각을 동일한 것으로 강조하는 돈오
원각론은 성철선의 제1종지이다. 돈오견성이 원각이라야 한다는 성철선
의 이 종지는 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를
함께 담고 있다. 과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유일한 종교였
『
24 大般涅槃經』(T12, p.480c), “言阿闍者, 名爲不生, 世者名怨. 以不生佛性故, 則煩
惱怨生, 煩惱怨生故, 不見佛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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