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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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조선조에 들어 배불정책이 시행되기는 하였지만 유일한 종교로서의

             지위를 위협 받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유일신과 예수의 신성성을 강조
             하는 기독교가 보편적으로 수용되면서 문제는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살

             불살조의 전통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부처를 부정하는 방만한 진리
             담론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것은 불교의 종교성에 회의적 논

             의가 일어나는 지점이 되곤 하였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는
             기독교발 논의가 그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에 선종의 우수성을 그대로 지키되 전체 불교사적으로 그것이 부
             처님에게서 내려오는 불교의 정통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것

             은 선종 내적으로 보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종의 역사
             를 보면 조사선을 여래선의 위에 두고자 하는 관점이 팽배해 있었다. 우

             리나라에 널리 퍼졌던 진귀조사설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틀
             을 깨뜨리는 선가의 언어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이 전설을 글자 그대로 믿는 오해가 일어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에 성철스님은 돈오로서의 견성을 표방하는 선종의 전통을 계승하

             는 한편, 견성이 곧 부처님의 구경원각과 동일한 것임을 강조하는 논의
             들을 수집한다. 그 수집된 자료의 총정리가 바로 『선문정로』이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간화선 선사였던 성철스님이 왜 『백일법문』과 같은 불
             교학 개론을 내놓았던 것일까? 또 왜 부처님처럼 살기를 표방했던 것일

             까? 그것은 그 당면한 숙제에 대한 불교의 답안이 부처님에게서 시작하
             는 것이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견성과 부처님의 깨달음을 동일

             한 것으로 강조하는 돈오원각론이 성철선의 제1종지가 되는 것이다.
                인용문의 경우를 보자. ①에 보이는 바와 같이 ‘대반열반大般涅槃’을

             ‘대열반大涅槃’으로 줄여서 인용하였다. 동의어로 쓰이는 관계이기 때문
             에 기본적으로 의미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단순 생략에 해당한다.




                                                             제1장 견성즉불 ·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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