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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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면 ‘지혜와 고요함이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 된다. 거울의 몸체와 거
울의 비추는 작용이 둘이 아닌 것처럼 움직임 없는 본체로서의 고요함
(寂)과 밝게 비추는 활용으로서의 앎(知)이 둘이 아니다. 이것이 원문에
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번역문에도 ‘체體에 즉卽한 용用이 자지自
知하며 용用에 즉한 체體가 항적恒寂하여’와 같이 지知와 적寂이 둘 아닌
이치를 원문과 같이 옮기고 있다. 그러므로 문맥적으로 이 앎(知)을 지
혜(智)로 바꿀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것을 필사의 오류라고 단
정짓는 일은 유보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의 번역문이 ‘지智와 적寂이
둘이 아님’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용문의 앞에 “관찰하는 주체가
없음을 본체라 했는데 무념이 본체라는 뜻이고, 비추는 지혜(照智)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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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위에서 말한 무분별지를 가리킨다.” 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어쩌
면 이 구절의 지혜(智)를 가져오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②의 ‘지之’ 자는 단순 생략에 해당한다. 의미에 큰 차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마음을 진여로 옮긴 ③의 번역은 흥미롭다. 마음은
본래 부처나 중생이나 차별이 없다. 320 다만 현실적으로 중생은 분별망
상에 빠져 있지만 부처는 진여에 계합하여 무분별지에 노닌다. 이것이
중생과 부처의 다른 점이다. 이러한 맥락의 끝에 제시된 것이므로 이
마음은 부처의 마음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이것을 진여로 번역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성철스님이 우려하는 것은 마음을 생멸심으로 이해
하는 일이다. 분별의 생사윤회에 빠져 있으면서 그 마음이 바로 진여라
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지해적 차원의 눈뜸을 깨달음으
로 오인하는 착각의 시작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차
『
319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T36, p.625b) “無觀是體者無念體也, 照智是上無分
別智.”
『
320 大方廣佛華嚴經』(T10, p.465c),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제12장 상적상조 · 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