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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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철스님 해오점수 설법의 특징


                성철스님은 불법을 배우고 익혀 지해적 차원의 깨달음을 체험한 뒤

             이에 바탕하여 점차 닦아 나간다는 의미에서의 해오를 부정한다. 선문
             에는 보편적으로 해오를 부정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것이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깨달음인 증오와 천양지차가 있으며 진실한 깨달음을 방해하
             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규봉스님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그것은 결국 돈오가 곧
             해오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규정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규봉스

             님은 증오보다 해오를 중요하게 보았다는 것이다. 이후 선문에서 돈오
             는 조사선의 특징이고, 점수는 여래선의 특징이라는 논의가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돈오를 특징으로 하는 조사선이 여래선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이 수립된다. 한국에도 진귀조사설이 유행하는 등 조사선을 높이

             는 흐름이 있었다. 이에 대해 성철스님은 조사선과 여래선은 다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성철스님의 모든 논의는 종문의 선사들이 체험한 돈

             오가 곧 석가여래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취한 원각과 다른 것이 아니라
             는 돈오원각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이 돈오점수라는 익숙한 용어 대신 해오점수라는 낯선 단어
             의 조합으로 장 제목을 정한 것도 규봉스님의 논리적, 실천적 파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규봉스님의 수증론과 그것을 적극 수
             용한 보조스님의 돈오점수론이 전적으로 부정되고 배격된다. 해오이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이 거듭 강조하는 바와 같이 선종은 일초직입여래
             지, 당하무심, 돈오견성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성립된 종파이다. 여기에

             다시 해오를 인정하는 것은 그 뿌리를 뒤흔드는 일에 해당한다. 그래서
             부처의 지위에 곧바로 들어가고자 하는 선문의 입장에서 그것은 비상




                                                            제13장 해오점수 ·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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